전통음식 전통 식문화와 식생활 궁중음식

1. 전통 식문화의 계승
2. 통과의례와 음식
3. 상차림
4. 고명
5. 고려 말기에 되찾은 고기(肉)요리

1. 전통 식문화의 계승
 과거 정착생활과 함께 시작된 농경생활은 우리 나라 식생활의 커다란 중심이 되었다. 상대적으로 국토가 좁은 이유도 있겠지만 지금까지 땅에 대한, 집에 대한 애착이 유난히 각별한 건 우리 민족이 과거부터 이러한 생활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된다. 식사에 있어서도 수렵을 위주로 생활했던 서구인들의 식생활이 시간 전개형, 즉 음식이 나오는 순서에 따라 식사하는데 반해, 우리 나라는 한 상에 주식과 부식을 모두 차려 놓고 식사하는 공간전개형의 식생활을 이어왔다.
또 서양과 다른 점은 立食(입식)과 坐食(좌식)형태의 식생활로 식탁문화는 조선시대에도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특징이 있다면 주식과 부식을 분리하였고, 김치, 젓갈과 같은 저장식품이 발달했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국물 문화로 숟가락 사용이 절대적이지만 우리보다 먼저 사용하기 시작한 일본과 중국에서는 그것이 사라지는 추세라고 한다. 가끔 민족성과 연결하여 말하는 경우가 있는데 우리는 아주 뜨겁고 매운 것을 먹어야 뭐 좀 먹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극적인 음식을 좋아한다. 계절마다 그때 그때의 절식음식이 발달했고, 음식의 간을 중요시해서 음식을 낼 때 미리 간을 맞춰낸다. 그리고 상차림에서 식사 분량의 기준은 사람의 수가 아니라, 그릇으로 식탁을 구성하다 보니 음식의 낭비가 많은 편이다.
(1) 젓가락과 숟가락 문화
식문화 연구가들은 세계를 젓가락 문화권과 포크 문화권, 그리고 맨손 문화권으로 나눈다. 대표적 젓가락 사용국은 한국, 중국, 일본, 베트남이며, 미국과 유럽권은 포크 문화권이며, 인도를 비롯한 서남아시아와 아랍, 아프리카는 맨손 문화권에 속한다. 젓가락은 집고, 찍고, 찢고, 자르고, 옮기기 등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는데 반하여, 찍고, 들어올리기 두 기능밖에 못하는 포크에 비하면 놀라운 재주다. 1980년대까지 기능올림픽에서 한국이 금메달을 휩쓸 때 손재주 원천을 젓가락에서 찾은 이들이 많았다. 어려서 자연스레 익혀온 젓가락질이 바로 눈과 손의 협응을 촉진시켜 고도의 두뇌 작용을 가능케 한 것으로 추정된다. 젓가락이 인간 생활에 등장한지 2,500여년 백제 무령왕릉 출토품에도 청동 수저가 들어있다. 서양서 포크를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게 불과 400여년 전인 데 비하면 참으로 오랜 문명생활이다.

젓가락을 쓰는 동양 삼국가운데서 우리 나라만 유독 젓가락과 숟가락을 아울러 사용하는 전통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공자시대는 숟가락이 사용되고 있었으니 조선조의 숭유주의자는 끝내 숟가락을 버리지 않았던 것이다. 한편 유학자들은 신분질서의 안정에 필요한 의례를 중요시하고, 주자가 가르친 가례를 모범으로 삼아 상례식, 제례식, 혼례식 등에 관한 규범을 만들었으나, 특히 제례식은 사소한 방법론에 얽매여 유학자 사이의 고집이 당쟁의 실마리가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제찬의 규범에 아무리 가난하여도 잡곡밥을 올리지 않고 쌀밥을 올리니 제사덕은 이밥 이란 말이 생겨나고, 제사 후에 음복으로 일가친척의 단결을 다짐하고 모든 음식을 고루 먹기 위한 방법이 오늘날의 일품요리인 비빔밥을 낳기도 하였다. 또 남녀는 칠세 부동석 이란 유교정신에 따라 남녀가 한 상에서 식사하는 것을 금했다. 남자의 상은 대개 독상인데 비하여 여자들은 부엌에서 먹거나 상아래 방바닥에다 밥 사발을 놓고 식사하기 마련하였다. 그러다가 조선시대에는 국민사이에 빈부차이가 격심해지고 식생활도 신분에 따라 심한 차별제도가 생기게 되었다.

(2) 전통 상차림문화

 우리의 전통 상차림은 주식과 부식을 분리하여, 영양상 균형 있고 맛있는 식사를 위하여 재료와 조리법을 감안하며, 일정한 형식을 세우게 되었으니 이것이 3첩에서 12첩에 이르는 상차림이다. 첩이란 뚜껑 있는 반찬그릇의 수에 따라 첩수를 세는 것인데 3첩이란 반찬 3그릇을 상에 올리는 것이다. 서민들의 상차림은 3첩이 고작인데 비하여 사대부집에서는 7첩·9첩이고, 왕의 평소 수라상은 12첩이었다. 그런데 실제로 식료의 생산을 담당하는 농민들의 식생활은 상상이상으로 비참하였는데, 인위적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흉년이 오면 3첩 상차림은 고사하고 굶기가 예사이고 「보릿고개」란 말도 생기게 되었다.
서양 사람들이 음식 먹는 유형을 시간전개형 식사라 하는데 코스의 순서에 의하여 요리가 차례로 제공되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 음식이 서양 사람에게 쉽게 친근해진 이유는 중국 식사문화가 시간전개형이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한국 사람은 마련된 음식을 「밥상」이란 공간에 한꺼번에 전개시키므로 공간전개형 식사라고 한다. 시간전개형 식사는 식사시간을 연장시켜 유유자적하려 하는데, 공간전개형은 단축시켜서 시간을 절약하려 한다. 미국 사람이 많이 찾는 한국 음식으로 국제적으로 알려져 있는 김치-불고기-비빔밥 말고도 빈대떡-갈비-잡채-만두-해물탕-낙지볶음-파전-순두부와 대표적 향수음식인 설렁탕-냉면도 들 수 있다. 세계 문화권을 위도(緯度)의 고저(高低)로 갈라본 문화지리학자 헌팅턴은 한국이 속한 중위도권 문물이 가장 세계적인 자질을 갖추고 있음을 문화교류 사례를 들어 제시했다. 한국 음식에도 세계적 보편성이 잠재돼 있으며 문제는 문화갈등을 극소화하여 접목시키는 일일 것이다.



2. 통과의례와 음식
통과의례(通過儀禮)란 민속학에서 쓰는 말로, 사람이 출생하여 한평생 사는 동안 치르게 되는 여러 가지 크고 작은 고비를 지날 때에 치르는 의식이나 의례를 말한다. 이 때에 차려지는 음식을 우리는 「의례 음식」이라 한다. 의례의 형식은 나라와 민족, 그리고 문화 형태나 시대에 따라 달라지게 마련이다. 우리 조상들이 지켜내려 온 의례에 관련된 풍습은 지금도 면면히 지켜져 내려오고 있다.
예를 들면, 지금도 생일날에는 미역국에 흰밥을 먹고, 시집가거나 장가드는 날은 국수를 먹으며 축하하는 일 등이다.
동양 문화권에서는 인륜대사(人倫大事)라 하여 사례(四禮)를 치르는 일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사례란 곧 관례·혼례·상례·제례를 말하는데, 그 중에서 상례와 제례는 그 자손이 치르게 되는 의례이다. 모든 의식 절차에는 기원·기복·외경·존대의 뜻이 따른다.
(1) 출생(出生)
혼인을 하면 누구나 아이를 갖기 원하고, 아기를 갖게 되면 태아를 위하여 행동을 조심하여야 하고, 먹는 것도 가려서 먹고 태아에게 나쁘다고 일컬어지는 일은 극히 꺼리게 마련이다. 산월 전에 시부모나 남편이 산모를 위하여 산미(産米)와 산곽(産藿)을 마련한다. 장에 가서 길이가 긴 미역(장곽)을 골라 사서, 꺽지 않고 둘둘 말아 어깨에 메고 와서 시렁이나 선반에 매달아 놓는다. 미역을 꺽는다는 것은 사람이 꺽인다 고 하여 꺼리는 것이다.
아기가 태어나면 산미로 새옹에 쌀밥을 지어 흰 사발에 고봉으로 세 그릇을 푸고, 산곽으로 쇠고기미역국을 끓여 세 그릇을 떠서 삼신상에 다시 차려놓고 감사하다고 장수를 빈다. 산모에게도 똑같이 차려서 첫국밥을 먹인다. 삼신의 삼은 태를 뜻하기도 하니 태신을 말하며 삼신은 포태를 관장하는 호산의 신이라고 한다.
(2) 삼칠일(三七日)
일찍이 우리 나라의 산모는 쑥물로 몸을 씻고 아기도 목욕을 시켰다. 지금은 낳아서 바로 목욕을 시키나 옛날에는 부드러운 헝겊으로 아기의 몸을 문질러 두었다가 삼일만에야 물로 씻겼다고 한다. 아기 머리맡에는 「삼신할머니」를 모시는 흰밥과 미역국으로 삼신상을 차려두었다. 한 이레, 두 이레, 세 이레를 잘 지내면 모든 금기를 풀며 대문에 달았던 금줄도 걷고 가까운 일가 친척을 청하여 처음으로 새 아기의 선을 보인다. 세 이렛날은 흰밥과 미역국에 나물류 몇 가지만 장만하여 간소하게 밥상을 차린다. 산신께 올리는 때는 쇠고기미역국을 썼고, 다른 때는 홍합·쇠고기·닭고기 등 육류를 넣고 끓여 먹였다. 예전에 궁중이나
부잣집에서는 첫 이레, 두 이레, 세 이레마다 수수팥단자를 많이 만들어 큰그릇에 수북히 담아 집 앞에 놓고 길을 가는 사람에게 나누어주었는데, 이것을 인부심한다 고 했다. 수수는 붉은 빛을 띠기 때문에 잡귀가 물러간다는 속설에서 연유된 풍습이었을 것이다.
(3) 백일(百日)
아기가 출생한 지 백날이 되면 일가 친척은 물론 이웃 사람들을 청하여 아기를 보여주며 축복을 받고 백설기와 음식을 차린다. 최남선의 『조선상식문답』에 백일을 경축하는 의미를 백일이 되면 사망률이 가장 많은 시기를 넘어설 뿐만 아니라 한편으로 갓난아기가 사람을 반겨 방실방실거릴 줄 알아 경사스런 마음이 더 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라고 쓰여 있다. 아기를 위해서 음식을 풍성하게 차리는데 흰무리(백설기)는 백설같이 순수 무구함을 뜻하며 아기를 찬양하는 의미가 된다. 수수팥떡은 부정한 것을 예방하는 주술적인 뜻이 포함되어있다.
(4) 첫돌
 아기가 나서 만 한 살이 되면 자축과 축복을 겸한 잔치를 베푼다. 돌을 맞는 아이를 돌장이 라 하여 그 날의 주인공이 되고 돌잡히는 풍속이 있다.
 흰무리·수수팥단자·쌀·국수·과실·돈·대추·종이·붓과 먹 등을 늘어놓고, 실패, 자 등의 모두 유래가 있는 물건들을 놓는다. 무명필을 접어서 방석 삼아 아기를 앉히고 가족과 친지들이 모여서 아기가 무엇을 먼저 잡는가 구경을 하며 아기의 장래를 점친다. 책을 먼저 집으면 글을 잘 하게 되고, 활을 잡으면 장군감이고, 자를 잡는 여아는 바느질을 잘 하게 된다는 것이다. 쌀은 부자가 되고, 대추는 자손이 번영한다고 한다. 돌날 손님상은 흰밥에 미역국과 나물·구이·자반·김치·조치 등 반상을 차려서 대접한다.
(5) 생일(生日)
아기가 장성함에 따라 매해 생일날을 축하한다. 어른의 생일은 생신이라 하여 아랫사람이 축하를 드리고 잔칫상을 차려드린다. 어린 사람은 생일이라 하여 어른이 차려서 먹인다. 생일상에는 삼칠일 때처럼 미역국과 흰밥을 빼지 않고 차리며, 또 아이들 생일에는 떡을 만들어 친척과 이웃간에 나누어 먹는다.
(6) 관례(冠禮)
  옛날에 남자는 20세에 어른의 복색을 입히고 상투를 틀고 갓을 씌우는 관례를 행하고, 여자는 15세에 땋았던 머리를 풀고 비녀를 꽂는 계례( 禮)를 지냈다. 이것은 성인이 되었음을 사회적으로 인정하는 의식 절차이지만 나이가 차지 않았어도 혼례를 치르면 성인 대접을 하였다.
  관례의 의식은 부모와 존속친이 길일을 택하여 빈(주례자)의 주관으로 삼가례를 행하는데 삼가례란 머리에 쓰는 것과 옷, 신을 세 번 다른 것으로 착용한다는 뜻이다. 초가는 성인이 된 것을, 재가는 진사되는 것, 삼가는 벼슬함을 의미한다.삼가를 세 번 갈아입지 않고 한 번에 행할 때는 망건, 복건, 초립을 한 꺼번에 썼다.
(7) 혼례(婚禮)
혼례는 사례의 하나로 의혼(議婚), 납채(納采), 납폐(納幣), 친영(親迎)의 네 가지 절차를 밟아야 한다. 결혼은 양가의 어버이가 정하는 것이며, 연애를 했다 해도 결국 어른들의 동의를 받아서 정혼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이다.
납채란, 신랑집에서 신부집으로 청혼에 대하여 허혼을 감사한다는 편지를 보내고, 신부집에서는 회신을 보내는 것이다. 납폐는, 친영 전에 신랑집에서 신부집으로 함에 채단과 혼서지를 넣어 함진아비에게 지워 보내는 일을 말한다. 요즘에는 혼인 전날 저녁에 함을 보내는 것이 통례이다. 친영은 신랑이 신부를 맞이해 온다는 뜻으로 혼례에서 가장 중요한 절차이다.

1) 교배상(交拜床)
사철나무·대나무·동백나무를 꽂아 상 좌우로 놓고 촛대 한 쌍에 청홍색 촛불을 켠다. 또 시골에서는 봉황새를 닮은 닭 한 자웅을 목만 내놓고 보자기에 싸서 놓는다. 상차림은 쌀, 팥, 콩, 밤, 대추, 곶감, 삼색 과일과 떡을 담으며, 또 숭어 한 쌍을 쪄서 신랑 것은 밤을 입에 물리고, 신부 것은 대추를 입에 물려 담는다.

2) 큰상
혼례식이 끝나면 신랑에게는 큰상을 차려 축하하는데 고배상 또는 망상이라 한다. 그리고 신랑, 신부 앞에는 입매상을 차리고 큰상에는 각색 과일과 과자, 어육을 고루 차린다. 음식의 내용은 강정·유밀과·다식·숙실과·당속·과실류·전과·편·어물새김·편육·전유어·적 등이다. 또 가화(假花)라 하여 색종이나 얇은 비단으로 꽃을 만들어서 고임 음식에 꽂기도 하였다.

3) 이바지 음식, 폐백
시가에 갈 때는 신부댁에서 이바지 음식과 폐백 음식을 만들어 간다. 집안이나 지방에 따라 만드는 물건이 달라지지만 대개 서울에서는 청주·대추·쇠고기로 만든 편포를 가지고 가고, 지방에는 편포 대신 폐백닭(통닭찜)을 가지고 간다.
폐백을 드리면서 신부가 시부모에게 절을 올리면 시어머니는 대추와 생률 등을 신부의 치마폭에 던져주면서 아들 딸 많이 나아서 잘 길러라. 고 덕담을 하는데, 이 대추는 자손 번영을 뜻한다고 한다. 신랑집에서도 신부에게 고배상을 차리는데, 규모는 대개 신부집과 비슷하다. 이 음식은 색시를 데리고 간 후행이 돌아올 때에 석작(대그릇)에 담아서 봉송으로 보내는데 이처럼 혼인하여 사돈으로 되면 음식을 주고받는 것이 우리의 풍속이다.

(8) 회갑례(回甲禮)
부모가 60회 생신, 즉 회갑을 맞으면 자손들이 모여 연회를 베풀어 드린다.
이때 혼례상과 같은 고배상을 차리고, 차례차례 자손들이 잔을 올린다. 헌주가 끝나면 초청한 친척과 부모님의 친구들에게 국수장국을 중심으로 고배했던 음식을 고루 차려 대접한다. 회갑례는 사례에는 들지 않으나 가정의 대사 중의 한 가지이다.
(9) 회혼례(回婚禮)
회혼례는 혼인하여 만 60년을 해로한 해의 결혼 기념 예식을 말하며 회근례라고도 한다. 자녀도 많고 유복한 살림을 하면 부부가 처음 귀밑머리 풀 때를 생각하여 다시 신랑, 신부처럼 복장을 하고 자손들에게 축하를 받는다. 이 의식도 혼례에 준하나, 자손들이 헌주하고 권주가와 음식이 따르는 점이 다르다.
(10) 상례(喪禮)
부모가 운명하면 자녀들은 통곡하며 비탄 속에서 시신을 거두고 버드나무로 깍은 숟가락으로 쌀을 세 번 입에 넣어 이승의 음식을 드린다. 또 망인을 저승까지 인도하는 사자가 있다고 생각하여 사자밥을 해서 대문 밖에 차려 놓는다. 밥과 짚신 세 켤레, 담배, 술, 반찬까지 차리고 노자도 두둑하게 놓고 망자를 좋은 곳으로 안내하도록 부탁한다. 입관이 끝나면 혼백상을 차리고 촛대와 초·향로와 향·주·과·포를 차려놓고 상주는 조상을 받는다. 출상할 때까지 여러 가지 절차를 거치고 제물을 제기에 괴어 담는다. 크고 작은 제사를 여러 번 지내고 봉분까지의 산역이 끝나면 집에 돌아와 상청을 차려놓고 그로부터 만 2년 간 조석마
다 진짓상을 차려 올리는데 이를 상식(上食)이라 한다. 이 때는 망인이 생전에 쓰던 반상기에 평소에 들던 격식으로 진지와 찬을 차리는데, 만 2년 동안 흔히 살던 집을 떠나지 못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차린다. 특히 초하루와 보름날 아침은 삭망이라 하여 음식을 정성껏 많이 차리고 곡성을 내며 제사를 지낸다. 그 기간 중에 돌아가신 분의 생신이나 회갑을 맞으면 큰제사를 지낸다.

(11) 제례(祭禮)
소상, 대상이 지나면 기제사를 지내는데, 사당에는 4대조까지 모신다. 정월 초하루와 8월 보름의 명절 차례는 밝은 아침에 지낸다. 기제사 외에도 조상에게 사시제 또는 시제를 모시는데 대개 음력 10월에 날을 정하여 종친이 모여서 묘제를 지낸다. 제물은 자손이 조상을 공경하는 뜻으로 음복을 한다. 음식을 내려주신 것으로 생각하여 감사히 먹고 조상의 가호를 비는 마음을 갖게 된다.

1) 제상
제상은 가가례(家家禮)라 하여 집집마다 고장마다 진설법이 다를 수 있으므로 형편에 맞춰 정성껏 마련하면 된다. 제물의 가짓수가 적거나 양이 줄어도 무관하지만 제사란 자손의 정성으로 지내는 것이지 누가 지시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명심해야 한다. 생전에 미처 깨닫지 못해 효도를 하지 못하였음을 서러워하여 못다한 효도를 하겠다는 마음으로 제사 지내는 것은, 한편으로는 마음으로 조상의 가호를 기원하는 의미이기도 하다.

2) 제기
제물은 제기에 담는 것이 원칙이며, 절대로 산 사람의 식기와 혼동해서 써서는 안 된다. 제기 접시는 모두 굽이 6∼7cm 달려 있고 동그란 제기 접시가 크고 작은 것이 있으므로 제물의 양에 따라 각각 가려서 쓴다.

3) 진설법
제상에서는 진짓상에서의 진지와 탕의 위치가 정반대로 놓인다. 즉, 잡수시는 위치에서 오른쪽에 메가 놓이고 왼쪽에 탕이 온다. 수저는 상에 내려놓지 않고 시접에 담으며, 잡수시는 표적으로 집사(제사를 진행하는 사람)가 젓가락을 대접에서 세 번 그루박고 포 위에 놓는다. 자반조기나 어적, 북어포 등은 동쪽으로 머리, 서쪽으로 꼬리가 가게 놓으나 진짓상에서는 그 반대로 온 생선을 낼 때는 먹는 사람이 보아 좌로 머리가 가고, 꼬리는 오른쪽, 뒤쪽에 배가 오도록 놓는다.
그러므로 제사상에서는 그 생선을 뒤집어 담는다. 즉 두동미서(頭東尾西)로 놓으면서 등이 위패쪽으로, 배 부분이 참사자쪽으로 온다.

4) 제례의 진행
제사의 진행은 먼저 향을 피우고 일동 부복하여 오셨습니까 의 뜻으로 배례하고 집사자가 축문을 낭독한다. 다음 증손부터 차례로 초헌·아헌·종헌으로 제주를 석 잔 올리고, 지손(支孫)들은 첨작(添酌 : 종헌 드린 잔에 다시 덧부어 술을 가득 채우는 일)을 한다. 여기까지가 반주를 드신 격이다. 개반개(開飯蓋 : 주발 뚜껑을 여는 일)하고 삽시(揷匙 : 숟가락을 메에 꽂는 일)하고 젓가락을 다시 그루박아 다른 찬물 위에 놓는다. 여기까지가 진지를 드시는 절차이다.
참사자들은 잠시 물러가 있다가 다시 모여 서고, 탕그릇을 내리고 물그릇을 올린 후에 밥을 한 숟가락 떠서 물에 만다. 생존 시 뜨거운 숭늉을 드리는 순서로 혼백 앞에 정화수(우물물)를 올리는 것이다. 잠시 후 숟가락과 젓가락을 거두고 일동 재배한 다음 그 자리에서 소지(燒紙 : 지방을 불살라 공중에 띄우는 일)한다. 제사가 모두 끝나면 종손부터 차례로 음복하고 조상의 가호를 빈다.


3. 상차림
상차림이란 한 상에 차려지는 주식류와 찬품을 배선하는 방법을 말한다. 일상식에는 밥과 찬을 차리는 반상과 죽과 찬을 차리는 죽상, 국수·만두·떡국을 차리는 면상·만두상·떡국상이 있다. 손님을 대접하는 교자상이나 술과 안주를 차린 주안상과 다과를 차리는 다과상이 있다. 의례적인 상차림은 돌상·혼례상·큰상·기제기상 등이 있다.

(1) 우리 나라 상차림의 변천

음식을 담은 그릇을 발이 달린 상에 차리게 된 것은 언제부터인가는 확실하지 않다. 고구려의 통구(通構) 무용총(舞踊塚)의 벽화(1940년 발굴)를 보면 상의 모습이 보인다. 두 여인이 음식을 나르는 모습 의 그림은 한 여인은 다리가 달린 소반을 들고 또 한 여인은 쟁반처럼 다리가 없다. 그리고 같은 무용총의 벽화인 객을 맞이한 그림 은 오른쪽에 남자 주인과 왼쪽에 손님이 앉아서 각각 여러 가지 음식을 차린 상을 받고 있다. 주인 앞에는 칼을 가진 사람이 시중을 드는 모습이다. 이 벽화로서 고구려 시대의 손님 접대의 입식 식사 방법을 알 수 있다.

한편 통구의 각저총의 벽화에서는 주인으로 보이는 남자는 의자에 앉아 있고, 갱( )의 바닥에는 두 여인이 끓어 앉아 있으며 그 옆의 상위에는 음식이 놓여 있다. 이 벽화에서 보면 고구려에서의 평상시의 식사는 높이가 낮은 소반과 같은 식상에 한 사람씩의 외상 차림으로 좌식이었던 것 같다.
고려 시대에는 일상식 상차림을 알 수 있는 우리 나라의 문헌은 없다. 『고려사』지에 나온 제례 때의 직급에 따라 제물의 풍수를 제한하였다. 제사는 조상이 생전에 좋아했던 것을 차리는 것이니 일상적인 식단의 상차림이 이와 비슷하였으리라 본다. 그리고 송나라의 서긍이 쓴 고려 기행문인 『고려도경』 잡속의 향음조( 飮條)에는 고려인은 탑(榻)위에 또 소조(小俎)를 놓고, 구리 그릇을 쓰고 어포·육포·생선·나물을 섞어서 내오나 풍성하지 않고, 또 주행(酒行)에도 절도가 없으며 많이 내오는 것을 힘쓸 뿐이다. 탑마다 손님 둘씩 앉을 뿐이니, 만약 손님이 늘어나면 그 수에 따라 탑을 늘려 각기 마주 앉는다. 고 하였으니 고
려 때의 손님 접대는 겸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의 궁중의 연회 기록을 적은 『진찬의궤』, 『진연의궤』와 궁중의 음식발기 등에 나타난 상차림을 살펴보면, 왕·중전·대왕대비·세자·세자빈 등의 왕족은 각기 음식을 높이 고인 고배상과 곁반에 더운 탕·차 등을 따로 받는다. 직위가 높은 고관들은 외상 차림이고, 아래 직급은 겸상이고, 더 아래의 직급들은 두레상에 한데 대접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서민의 일상식은 유교 사상에 영향이 크므로 어른과 남자를 존중하여 외상 차림의 반상을 차렸다.
하나의 상차림이 되는 여러 음식들의 내용을 한데 적은 것을 음식발기(飮食件記) 또는 찬품단자(饌品單子)라고 한다. 요즘에는 식단(食單)이라고 하며, 서양식에서의 메뉴(menu)에 해당된다. 이는 식당에 있는 음식의 종류와 가격을 적어놓는 메뉴가 아니고 한 상에 차려지거나 한 끼의 식사에 먹는 음식을 모두 적은 것이다.
우리 음식이 전통적인 상차림의 형식을 체계적으로 갖춘 때는 조선시대라 하겠다. 궁중에서의 연회식은 고려시대에 중국과의 교류의 영향으로 체계를 이루기 시작하였고,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정중하고도 복잡한 절차와 좋은 기명과 상에 다양한 음식을 차렸다. 연회음식이 고도로 발달하여서 종류가 다양해지고, 높이 고이는 고임상의 형식이 정착되었다. 문헌적 자료로는 일이나 기쁜 일이 있을 때에 차린 작은 규모의 잔치 음식발기가 많이 남아 있다.

(2) 반상차림

밥, 국, 그리고 김치와 찬을 한데 차리는 밥상은 먹는 사람에 따라 부르는 명칭이 다르다. 나이 어린 사람에게는 밥상이라고 하고, 어른에게는 진짓상, 임금님의 밥상을 수랏상이라고 부른다.

1) 반상의 구성법

반상은 쟁첩에 담는 찬품의 가짓수에 따라 3첩 반상, 5첩 반상, 7첩 반상, 9첩반상으로 나뉜다. 궁중에서만 12첩 반상을 차리고, 민가에서는 9첩까지로 제한하였다. 기본으로 놓는 것은 밥·국·김치·청장이고, 5첩 반상이 되면 찌개를 놓고, 7첩 반상에는 찜을 놓는다. 전·회·편육을 찬으로 놓을 때에는 찍어 먹을 초간장·초고추장·겨자즙 등의 조미품도 함께 곁들인다.
김치도 반찬 수가 늘어남에 따라 두 세 가지를 놓는다. 찬품을 마련할 때에는 음식의 재료와 조리법이 중복되지 않도록 하고, 계절에 따라 식품을 선택하여 계절감을 살리면 훌륭한 식단이 구성된다.

2) 반상의 배선법

음식을 상에 배열하는 법을 배선법이라 하며 원칙은 혼자서 먹게 차리는 독상 또는 외상차림의 정식이다. 그러나 사정에 따라 겸상도 하고 두리반 형식으로 차리는데 먹는 사람의 수에 따라서 배선법이 다르고 음식의 종류와 가짓수에 따라 달라진다. 약식으로 노부부, 미혼의 형제나 동서, 친구들 사이는 친밀하다는 뜻으로 한 상에 수저 두 벌과 진지와 탕을 두 그릇씩 놓아 겸상을 차란다. 찌개나 찜, 김치 그 밖의 반찬은 한 그릇씩 놓는다. 예전에는 부친과 장성한 아들과는 겸상을 하지 않았으나, 어리고 성년이 되기 전에는 겸상을 하며, 할아버지는 손자와 함께 겸상을 하는 예가 많이 있었다.

① 외상 차리기

°상에 수저 한 벌을 오른쪽에 놓는데 숟가락이 앞쪽, 젓가락이 뒤쪽으로 가도록 나란히 하여 상 끝에서 3㎝ 정도 나가게 놓는다.

<표 2-1> 반상의 구성법

  조리법 구분 12첩 9첩 7첩 5첩 3첩



① 밥·수라
② 국·탕
③ 찌개·조치
④ 찜 또는 선
⑤ 전골
⑥ 김치류
⑦ 장류
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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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
3
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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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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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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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택일

2
2~3

1
1
택일



2
2
1
1
×
×
×
1
1

① 구이·적(더운 구이)
② 구이·적(찬 구이)
③ 조림·조리개
④ 전유어·전냐

⑤ 숙채
⑥ 생채

⑦ 장아찌·장과
⑧ 젓갈
⑨ 마른찬·좌반
⑩ 편육·수육
⑪ 별찬·회
⑫ 별찬·수란
1
1
1
1

1
1

1
1
1
1
1
1

택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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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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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일

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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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

택일



택일
택일
1
1



택일


택일



×
×
×
택일






×


택일



×
×
×

○ 맨 앞줄에는 밥을 왼쪽, 국을 오른쪽, 찌개를 국 뒤쪽으로 놓는다.
○ 종지는 왼쪽에서부터 간장·초장·초고추장·초젓국 등의 순서로 늘어놓는다.
○ 김치 보시기는 상 맨 뒷줄에 왼쪽부터 깍두기·배추김치·동치미의 순으로
놓는다. 제일 오른쪽에 국물 김치가 오도록 한다.
○ 반찬 그릇(쟁첩)은 중간 왼쪽으로 밑반찬류(자반·장아찌·젓갈 등)와 나물, 생채 등의 찬 반찬을 놓고, 오른쪽에는 더운 반찬인 전·구이와 회·편육·수란·김 구이 등을 먹기 쉽게 놓는다.
○ 찜그릇은 합 또는 조반기에 담아서 찌개 뒤에 놓는다.

② 겸상 차리기
겸상의 경우는 손님이나 손윗사람이 편하게 들 수 있도록 찬의 위치나 앉는 위치를 고려하여야 한다.
○ 외상과 다른 점은 마주앉기 때문에 수저를 각각 한 벌씩 놓고 밥과 국그릇은 따로 차린다.
○ 찌개와 찜그릇은 손님에 가까운 오른쪽에 놓고 종지들도 손님의 가까운 곳에 놓는다. 그리고 김치 보시기는 찌개와 찜그릇 뒤쪽으로 놓는다.
○ 반찬류 중에서 더운 음식과 고기 음식은 어른이나 손님 가까이에 놓고 밑반찬은 어린 사람이나 주인쪽에 놓는다.


4. 고명
(1) 식사 예법
우리의 단군 시조는 일찍이 의복, 음식 거처의 제도를 교(敎)하여 화(化)하시었다고 한다. 이처럼 우리 민족은 입고 먹고사는 데에 일정한 질서를 세우고 살아온 민족이다. 조선시대는 정치는 물론 사회 규범이 유교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이루어졌으므로 음식 먹는 예절도 엄하게 지켜왔다. 중국의 『예기』, 『주례』, 『논어』, 『맹자』 등의 고전에는 식에 관한 언급이 많다. 『예기(禮記)』에는 남과 함께 음식을 먹을 때는 배가 부르도록 먹지 말며, 남과 함께 밥을 먹을 때에는 손을 적시지 말아야 한다. 밥술은 밥을 뭉치지 말며, 밥숟가락은 크게 뜨지 말며, 물 마시듯 들어먹지 말아야 한다. 음식을 보고 혀를 차지 말며, 어느 것을 굳이 자신이 먹으려고 하지 말아야 하고, 빨리 먹으려고 뜨거운 밥을 헤젓지 말며, 기장밥을 젓가락으로 먹지 말아야 한다. 나물이 있는 국은 국물만 들여 마시지 말아야 하고 국에 조미하지 말아야 한다, 이를 쑤시지 말며 젓국을 마시지 말아야 한다. 손님이 젓국을 마시면 주인이 가난하여 맛있게 잘 만들지 못하였다고 사과하여야 한다 라고 사소한 부분까지 기록해 두었던 것을 보면 식사예절이 무척 엄격함을 알 수 있다.
『논어』의 향당편에는 쉰 밥이나 살이 뭉그러진 생선은 먹지 말라. 색깔이 나쁜 것은 먹지 말라. 익지 않은 것은 먹지 말라. 간이 맞지 않은 음식은 먹지 말라. 고기는 비록 많다 해도 식욕이 나는 대로 먹지 말라. 몸가짐이 흐트러질 만큼 술을 마시지 말라. 생강을 빼지 말고 먹을 것이며, 많이 먹지는 말라. 반드시 이와 같이 하라 는 식에 대한 공자의 자세한 배려가 적혀 있다.


산뜻한 별미의 굴(oyster)

굴은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늦가을에서 꽃피는 봄철까지 한창이고 맛도 절정이다. 굴을 좋아하는 서양에서도 12달 중 달 이름에 「r」자가 없는 5월 부터 8월까지는 먹지 않는 것으로 되어있다.
우리 나라 집안에서는 굴을 어리굴젓, 전, 국으로 먹고 있는데, 어리굴젓은 나박김치나 봄깍두기처럼 산뜻하게 삭힌 것이어서 그 맛이 또한 일품이다. 굴전은 그 자리에서 먹어야지 다시 데우면 맛이 감소한다. 굴을 이용하여 국을 만들 때 굴전을 톡톡한 고기장국에 넣고, 연하고 노란 움파를 넉넉히 곁들여 끓이면 맛이 희한한 파국 겸 굴국이 되는데 이 맛이 초여름의 도미국이나 준치국에 못지 않게 개운한 별미다. 석기시대의 유적인 패총의 태반이 굴껍질이라 하니 사람이 굴을 먹어온 역사는 유구하며, 영양학적으로도 이상적이어서「바다의 우유」라고 부를 정도이다.


(2) 식사의 예절

평상시에는 가족의 일상적인 식사인 밥을 주로 하여 반상을 차린다. 그러나 가족의 생일, 혼례, 회갑 등의 경사 때난 상례 등의 행사 때에는 많은 손님을 한꺼번에 대접하게 되므로 대개는 「교자상」에 네 사람 정도를 한 상에 차려서 대접하게 된다. 음식을 대접하는 사람과 먹는 사람이 지켜야 할 예의가 있고, 「반상」과 「교자상」에 따라 예법이 다르나 기본 마음 자세는 같다.
음식을 만드는 사람은 정성을 다하여 만들고, 손님이 편안하게 먹을 수 있게 끝까지 잘 보살핀다. 대접 받는 사람은 고마운 마음으로 잘 먹고 감사 인사를 잊지 말아야 한다. 음식을 먹을 때에는 옷차림이 단정하고 몸가짐이 의젓하고 자연스러워야 하고 큰 소리를 내거나 음식 먹는 소리를 내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다.

1) 반상차림의 예절

반상은 미리 부엌에서 음식 담은 그릇을 차려서, 상채로 들어서 손님 앞까지 옮긴다. 예전의 반상 차림은 어른께는 반드시 외상이 원칙이었으나 차츰 겸상도 하고 가족이 모두 한데 모여 두레반이나 큰 식탁에서 함께 하기에 이르렀다. 외상 차림으로 대접하는 예법은 다음과 같다.
① 손님에게 편하도록 밥·국·찌개·쟁첩에 담은 찬품들과 수저 등을 알맞은 위치에 놓는다.
② 상을 올리기 전에 먼저 식사하실 채비가 되었는가를 확인하고 웃어른이나 손님을 상좌(아랫목)에 앉으시도록 한다.
③ 음식을 차린 상을 들 때는 상 드는 사람 편에 김치가 놓이고 반대편에 잡수실 분의 밥과 국그릇이 가도록 한다. 양손으로 상 옆의 중앙을 단단히 잡고 팔꿈치의 높이 정도로 든다. 방에 들어가서 잡수실 분의 두 걸음 앞에서 무릎을 꿇으면서 내려놓는다. 그리고 상을 두 손으로 밀어 먹기 편한 위치에 놓는다.
④ 쟁첩과 종지의 뚜껑을 차례로 두 손으로 공손히 열고, 마지막에 국과 밥의 뚜껑을 열어 포개어 곁상이나 쟁반에 옮겨 담는다.
⑤ 진지 잡수시라는 말을 드리고 옆으로 물러앉아서 식사가 끝날 때까지 시중을 들거나 인사말을 하고 일어서서 뒷걸음하여 살며시 돌아 나온다.
⑥ 전골이 있을 때나 화로나 가열 기구 위에 전골틀을 얹어 더워지면 준비한 재료를 조금씩 넣고 익혀서 작은 그릇에 덜어서 상에 놓아 드린다.
⑦ 진지를 거의 잡수시면 국그릇을 내리고 대접에 숭늉을 담아 올린다.
⑧ 상을 물릴 때에는 들어갈 때와 마찬가지로 두 손으로 들고일어나서 두어 발 뒷걸음으로 나와 돌아서서 방을 나온다.

2) 교자상차림의 예절

교자상이나 두레반은 잡수실 곳에 상을 놓고 음식 담은 그릇을 옮겨서 차리게 된다. 손님이 안 계신 방에 미리 차리는 경우와 손님이 오신 후에 차리게 되는 경우가 있다 손님상을 차릴 때는 음식 외에 음료와 상차림에 필요한 그릇, 수저, 냅킨 등을 하루 전날에 준비해 둔다,

① 여러 사람이 한 상에 앉도록 차리므로 주빈이 앉는 자리를 정하고, 사람 수에 맞게 수저와 음식을 덜어 먹을 빈 접시를 놓는다.
② 음식은 한꺼번에 모두 차리지 말고 차가운 음식은 차갑게, 더운 음식은 뜨겁게 하여 바로 내놓아야 맛있게 먹을 수 있다.
③ 국물이 있는 김치나 화채 등은 큰그릇에 담지 말고 작은 그릇에 손님 수대로 담는다. 초장이나 초고추장 등의 조미품에는 덜 때 쓰는 작은 숟가락을 준비한다.
④ 손님들이 상에 앉으면 먼저 술을 내어 웃어른부터 권한다. 술과 음식을 어느 정도 들고나면 밥, 국수, 만두 등의 주식을 낸다.
④ 여럿이 한 상에 앉으면 음식이 멀리 있어 덜기에 불편한 사람이 없는가 살펴서 고루 들 수 있도록 배려한다. 더운 음식이 식으면 다시 덥혀 내고, 들고 난 빈 그릇은 따로 치운다.
⑤ 처음부터 후식인 과일·과자·떡 등과 차나 화채는 한 상에 함께 차리지 않도록 한다. 주된 음식을 다 드시고 나서 상위의 그릇들을 치우고 나서 상위의 그릇들을 치우고 후식을 내거나, 다른 방으로 자리를 옮겨서 후식을 대접하도록 한다.

3) 식사 중의 예절

① 어른을 모시고 식사할 때에는 어른이 먼저 수저를 든 다음에 아랫사람이 들도록 한다.
② 숟가락과 젓가락을 한 손에 들지 않으며, 젓가락을 사용할 때에는 숟가락을 상위에 놓는다. 숟가락이나 젓가락을 그릇에 걸치거나 얹어 놓지 말고 밥그릇이나 국그릇을 손으로 들고 먹지 않는다.
③ 숟가락으로 국이나 김칫국물을 먼저 떠 마시고 나서 밥이나 다른 음식을 먹는다. 밥과 국물이 있는 김치·찌개·국은 숟가락으로 먹고, 다른 찬은 젓가락으로 먹는다.
④ 음식을 먹을 때는 음식 타박을 하거나 먹을 때에 소리를 내지 말고 수저가 그릇에 부딪혀서 소리가 나지 않도록 한다.
⑤ 수저로 반찬이나 밥을 뒤적거리거나 헤치는 것은 좋지 않고, 먹지 않는 것을 골라내거나 양념을 털어 내고 먹지 않는다.
⑥ 먹는 중에 수저에 음식이 묻어서 남아 있지 않도록 하며, 밥그릇은 제일 나중에 숭늉을 넣어 깨끗하게 비운다.
⑦ 여럿이 함께 먹는 음식은 각자 접시에 덜어 먹고, 초장이나 초고추장 같은 조미품도 접시에 덜어서 찍어 먹는 것이 좋다.
⑧ 음식을 먹는 도중에 뼈나 생선 가시 등 입에 넘기지 못하는 것은 옆 사람에게 보이지 않게 조용히 종이에 싸서 버린다. 상위나 바닥에 그대로 버려서 더럽히지 않도록 한다.
⑨ 식사 중에 기침이나 재채기가 나면, 얼굴을 옆으로 하고 손이나 손수건으로 입을 가려서 다른 사람에게 실례가 되지 않도록 조심한다.
⑩ 너무 서둘러서 먹거나 지나치게 늦게 먹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 보조를 맞춘다. 어른과 함께 먹을 때에는 먼저 어른이 수저를 내려놓은 다음에 따라서 내려놓도록 한다.
⑪ 음식을 다 먹은 후에는 수저를 처음 위치에 가지런히 놓고, 사용한 냅킨은 대강 접어서 상위에 놓는다.
⑫ 이쑤시개를 사용할 때에는 한 손으로 가리고 사용하고, 사용 후에는 남에게 보이지 않게 처리한다.

힘들게만 보이는 우리의 식사 예절은 몸에 익히면 세계 어느 나라 사람들에 비하여 가장 세련되고 우아한 매너일 것이다.

(3) 식단작성의 기본 원칙

일상적인 경우는 하루에 필요한 영양권장량을 고려하여 세 끼의 식사를 영양적으로 편중되지 않게 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경제적 여건과 작업능률 등도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아래는 일상식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여러 가지 상차림의 식단을 작성할 때의 유의점이다.

① 반상, 면상, 주안상 등 상차림의 종류에 맞는 음식을 택한다.
② 계절과 식사하는 시간대를 고려한다.
③ 대상의 인물 구성과 연령, 성별 등을 고려한다.
④ 계절에 흔한 식품을 우선적으로 이용한다.
⑤ 식품의 천연의 맛, 색, 모양 등을 잘 살리도록 한다.
⑥ 다양한 조리법을 이용하여 변화 있는 음식을 만든다.
⑦ 음식의 조미를 다양하게 하여 음식마다 개성을 살리면서도 전체적인 조화를 고려한다.
⑧ 찬 음식과 더운 음식을 조화 있게 구성시킨다.
⑨ 전채 음식, 주된 음식, 후식의 성격을 확실히 구별하여 대접한다.

 


5. 고려 말기에 되찾은 고기(肉)요리

고려 초기에는 불교가 더욱 융성하여 肉食(육식)이 식생활에서 멀어지기 시작했으며, 특히 우육식(牛肉食)은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다 고려 후기 목축술이 능숙한 몽고의 지배하에 이런 사정은 바뀌게 되었다. 그들은 우리 나라 제주도의 기후가 온난하여 겨울에도 영하로 내려가는 일이 적고, 자생 목초가 풍부하며, 사나운 짐승이 없어 목장으로서 천혜적 조건을 갖는 곳인데 근거하여 충렬왕때 말과 우량한 품종의 소를 이끌고 제주도에서 목장을 개발하였다.
소를 제대로 도살하지 못한 고려인들은 몽고사람이나 회교도인들의 통추살(소를 망치, 몽둥이로 죽이는 방법)법을 배웠고, 이 방법은 배운 무리들이 나중에 화척, 백정(白丁)이란 계급을 형성하게 되었다. 고기 조리법도 이 때 몽고인에게서 전수되었는데, 대표적인 방법이 공탕(空湯)) 이 때의 공탕 이 지금의 곰탕의 원조인 것으로 추정된다.
으로 이는 맹물에 고기를 삶는 조리법을 의미한다. 따라서 고려 후기에 육식이 본격화되면서 개장국, 쇠고기를 쓴 육개장 등이 나타난 것으로 짐작되며, 중국의 영향을 받아 본격적으로 불고기, 갈비를 해먹기 시작하였다. 일본인들이 왜소한 이유는 몽고가 태풍으로 인해 침공을 못했기 때문에 육식을 늦게 섭취한 것이 까닭으로 판단된다.

쇠고기문화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마가렛 미드는 쇠고기를 부위별로 세분하여 아는 미각문화를 지닌 민족으로 한국인과 동아프리카의 보디족을 지적했고, 이규태는 육식민족인 영국인은 소를 35부위로 나누고 일본사람은 15부위, 우리 나라 사람은 120부위로 분류해먹는다고 지적하였다.

조선시대의 태종실록'에 의하면 쇠고기나 돼지고기를 도살하거나 외국에 전하는 것을 금하고 있던 조선조 초기에는 말고기를 포(脯)로 만들어 먹었다 한다.
고려후기 이후 쇠고기는 식용으로 많이 쓰였고, 돼지고기도 식용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양치는 기술이 없어 오직 염소만 길렀으며 개가 전국적으로 식용으로 이용되었다. 그리고 조선시대 요리책(調理書)에 개고기요리가 나오며 복날에는 개장국(狗醬)을 끓여 먹기도 하였다.

불고기의 유래

중국의 진(晋)나라때는 맥적(貊炙)을 상당히 즐겨먹었는데 귀한 손님이 왔을 때나 잔치 반드시 내놓았다. 맥이란 바로 고구려를 일컫는데 옛 고서의 내용을 정리해보면 "맥적이란 꼬챙이에 꽂아서 불 위에서 굽는 것이며 미리 조미해 둔 것"을 의미한다. 중국의 고기요리는 전통 적으로 미리 조미하지 않고 굽거나 조미료에 무쳐 먹는데 비하여, 적은 미리 조미하여 굽기 때문에 일 부러 조미료에 무쳐 먹을 필요가 없으니 장이 따로 필요 없었다. 모든 상황을 추려보면 맥적은 고기에다 고구려에서 나던 부추와 마늘을 충분히 넣고 우리가 자체 개발한 장(醬)으로 조미하여 구워먹는 것이나 미리 조미한다는 점에서 불고기의 원조인 것으로 추정된다.

보신탕, 보양탕, 개장국

狗(구)와 犬(견)은 어떻게 다른가? 구는 식용이고 견은 식용이 아닌 점이 가장 두드러진 차이점이다. 구육이니 구탕(狗湯)이니 하는 말은 있어도 견육이나 견탕(犬湯)이니 하는 말은 거의 하지 않는다. 그 대신 맹견이나 애견을 맹구(盟狗)나 애구(愛狗)라고는 하지 않는다.
따지고 보면, 우리 민족만 개를 식용하고 잇는 것은 아니다. 인도네시아의 바타크족은 검은 개를 좋아하여 사육하거나 낚시바늘에 고기를 꿰어 개를 낚아 모으기도 했다. 또 폴리네시아의 타히티인과 하와이인, 뉴질랜드의 마오리족도 개를 식용했는데, 폴리네시아인들은 일부의 개만 집안에서 기르고 나머지는 울타리를 치거나 보호될만한 나무 아래 특수한 오두막을 지어 길렀고, 빨리 살찌우기 위해 생선과 야채를 반죽한 것을 강제로 먹이기도 했다. 폴리네시아에서 개는 신과 나누어 먹어야 될 정도로 좋은 음식이라고까지 여겨졌다. 그래서 타히티와 하와이군도에서 사제들은 중요한 공적 행사에 개를 많이 잡았다.
허준의 동의보감에 의하면, 개고기는 性(성)이 溫(온)하며 味(미)는 시고(酸) 無毒(무독)이다. 오장을 편안하게 하며 혈맥을 조절하고 장과 위를 튼튼하게 하며, 골수를 충족시켜 허리와 무릎을 溫(온)하게 하며 양도를 일으켜 기력을 증진시킨다. 고 한다.